2008년 겨울 나는 친구와 함께 일본여행을 가고 싶었다.
안타깝게도 엄마가 뇌 혈관 관련 시술을 받아야했기에 여행은 포기하고, 대신 CCC 아가페에서 진행하는 금식기도회를 가기로 했다. 
못가게 되리라 생각도 못했지.
엄마는 AV fistula로 인해 embolization을 서울대병원에서 받기로 예정되어 있었고, CP로 2박 3일? 입원하는 스케쥴이었다.

겨울방학이라 놀고 있었던 내가 엄마 입원일에 동행했고 당일에 엄마랑 지하철을 탔는지 버스를 탔는지 기억은 안난다. 
병원에서 슬리퍼를 사지 않았다고 명동역 지하상가를 지났던 걸 기억해보면 아마 버스를 탔었나보다. 그때는 그저 나의 보호자는 엄마였고, 나보다 더 많은 능력을 가진 엄마였다. 세상일은 엄마가 더 안다고 생각했고 준비가 부족했던 엄마를 보며 짜증내기만 했던 것 같다. 

병원에 도착해서 입원수속을 하려는데 필요한 서류를 엄마가 가지고 오지 않았다고 한다. 대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언니에게 전화하고 마냥 엄마에게 화만 냈던 것 같다. 그 때 엄마는 그랬었지, 그냥 집에 가자고. 병실도 특실 밖에 없어 비용이 더 추가된다고 했고, 서류도 미비했고.. 어쩌면 그 때 정말 돌아갔다면 지금 우리의 모습은 많이 달라졌을수도 있는데.

엄마가 그냥 집에 가자고 했었던 마음은 어쩌면 그 깊은 속에 숨어있었던 두려움의 표출이 아니었을까? 이 모든 과정에서 아직은 어리다고만 느껴지는 딸을 옆에 두고 얼마나 두렵고 떨렸을까? 12년이나 지난 지금 그 때 엄마가 느꼈을 감정을 상상해보니 억장이 무너지고 눈물이 차오른다. 

여차저차해서 병실에 들어섰다. 병실은 3인실이었던 것 같고, 꽤나 젊은 (당시 엄마 나이는 만 51세) 아줌마가 딸을 데리고 입원을 하니 다들 관심이 많으셨다. 나는 그 때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기보다는 남자친구를 위해 목도리 뜨기에 여념이 없었고 그저 3일 뒤에는 엄마가 건강하게 병원을 나서는게 당연하다 생각했는데, 그 이후로 알게되었지.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고.

책 제목인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떠오른 구절
'미안해, 엄마도 이번생에 엄마는 처음이라..' 

병원에서 모든 것에 낯설어하고 어리숙하게 행동했던 모습들이 떠오른다. 시술 전 처치를 위한 여러가지 과정을 능숙하게 해내지 못했고 어리바리했던 엄마 모습이 그 때는 왜 그리 답답하게 보였을까. 

그리고 그 새벽, 레지던트가 불러내서 시술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사망할 수 있고, 심각한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고. 순간 너무 무서웠지만 그게 우리의 일은 아닐테니까. 그렇게 믿고 싶었는데 그 겨울은 나에게 너무 가혹했다.

엄마는 시술 중에 극심한 두통과 어지럼증을 호소했고, 시술을 중단하지는 않고 끝까지 시행해서 AVF의 embolization을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했다. 밖에서는 작은 언니와 함께 있었고, 아빠도 뒤늦게 왔던 것 같다. 울면서 엄마를 기다렸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이후에 CT를 찍었고, 돌아와서 엄마는 지속적으로 구역질과 어지럼증을 호소했던 것 같고, 엄마는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중환자실에서 마치 아기처럼 다리를 베베꼬고 입맛을 다시는듯 했다. 모든게 뇌 손상의 사인이었을까?
자세한 설명을 들었던 기억은 없고, 점차 연하작용과 엄마 컨디션이 좋아지자 일반병동으로 옮겨졌다. 엄마가 중환자실에 들어갈 때 했던 기도가 생각난다. 어떤 모습이든 좋으니 제발 엄마를 살려달라고 했었지. 하나님께서는 나의 그 기도를 들어주셨구나..

중환자실 보호자 대기실이 공사중이었어서 마땅히 작은언니와 나는 잘 곳이 없었고, 1층 외래파트에서 손잡이가 없는 의자를 붙여 노트북을 보고 다 괜찮아지겠지..하고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그때 우리 고작 21살, 24살이었는데.

그 길었던 서울대병원에서의 겨울은 잊고 싶기도 한, 하지만 잊어서는 안되는 그런 날들이었다.

우리 엄마는 얼마나 힘들었고 무서웠을까?
왜 나는 그 때 엄마에게 힘이 되어주지 못했을까? 
왜 그 누구도, 엄마가 지금 너무 힘든 상태일거야. 엄마를 잘 위로해드리고 너희들이 힘이 되어주어야해
라고 말해주지 않았을까. 누군가 그렇게 한마디라도 해줬다면..

어린 나이에 엄마의 보호자가 되어야했던 그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나는 자기 뜻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엄마를 답답해하고, 왜 이래야만하는지 하나님을 원망했는데
정작 엄마의 마음을 위로해주지 못한 모진 딸이었어야 했는지...평생 후회할 것 같다. 

그 때의 일들을 잘 기록해두지 않은게 참 후회된다. 기억을 되뇌여 글을 써내려가는데 최대한 왜곡이 없도록 노력했다.
지금부터라도 하루하루를 잘 기록해놓자..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건 기도와 엄마에게 따뜻한 한마디를 해주는 것 뿐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지..

항상 마음 속에 묻어두고 누구에게 말하지 못했던 내용들을 떠올리니 마음이 저며오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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