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가 알고 있는 난 네가 믿고 있는 난 내가 아닐지 몰라
그래 알아 네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지 네가 얼마나 진실한 사랑을 줬는지
하지만 내 마음이 말을 듣지 않아

너를 처음 만났을 때 사랑하게 될 거라는 걸 전혀 몰랐듯이
그 사람을 봤을 때도 이렇게 될 줄은 전혀 몰랐어 살며시
스며들어왔어 이럴려고 한 건 아니야 나의 뜻이
아니었어 정말 잠시 이러다가 다시 깨끗이

지워버리려고 했어 그리고 나서 다시 다시 너의 곁으로 돌아가려 했어 어차피 내겐
내겐 오직 너 하나뿐이므로 나를 향한 너의 사랑이 너무 예뻐서
나는 절대 널 두고 다른 사랑은 절대 할 수 없다고 믿었어 그런데 다른 길로 "

- god 2♡ 

 

인간이 어떻게 평생 한 명을 사랑하면서 살 수 있을까?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 너무 잘 알아서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도 다 아는 그 사람인데 

그 부족한 부분을 강점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 또는 그 중간쯤의 모습을 갖고 있는 사람 등등
차라리 결혼을 빨리 하면 보다 강력한 윤리적 잣대로 채찍질이라도 할텐데 
결혼 전 연애 중에는 그 마음을 지키는 것이 정말 어려운 것 같다.

주변에 이런 일도 다 있고만..!  

목포선교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매 순간이 감사의 순간이었던 것! 아 선교 왜왔지?하는 후회의 순간이 없었다

집회에서 받은 은혜와 선교지에서 받은 은혜가 참 컸다.

주님께 시선을 돌리기
하나님과 항상 친밀한 관계에 거할때 나의 삶의 모습이 귀하다!

목포 좋은교회 5,6학년 친구들과 어르신들 정말 반가웠고 이들 위해 끝까지 기도 놓지않기
버스에서 뜻하지 않게 어린이사역하며 만난 예일이

날마다감사하기
모난 나의 성격을 사용하시는 주님
감사..그저 감사합니다

목포에서의 이튿날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중보기도한 시간

나의 성격 중 장점만 사용하시고 단점들은 약하게하셔서 하나님하시는 일을 가리우지 않도록

나로인해 상처 받는 영혼 없도록

미워하고 답답해하지 않도록

이런 부분으로 영적 싸움에 무너지지 않게!

이런 나도 사용하시는 주님
온전히 나의 시선을 아버지께 드리고 감사함으로 나아가기
나를 통해 그이전에 나를 향해 일하시는 주님을 바라고 기도하기


2008년 겨울 나는 친구와 함께 일본여행을 가고 싶었다.
안타깝게도 엄마가 뇌 혈관 관련 시술을 받아야했기에 여행은 포기하고, 대신 CCC 아가페에서 진행하는 금식기도회를 가기로 했다. 
못가게 되리라 생각도 못했지.
엄마는 AV fistula로 인해 embolization을 서울대병원에서 받기로 예정되어 있었고, CP로 2박 3일? 입원하는 스케쥴이었다.

겨울방학이라 놀고 있었던 내가 엄마 입원일에 동행했고 당일에 엄마랑 지하철을 탔는지 버스를 탔는지 기억은 안난다. 
병원에서 슬리퍼를 사지 않았다고 명동역 지하상가를 지났던 걸 기억해보면 아마 버스를 탔었나보다. 그때는 그저 나의 보호자는 엄마였고, 나보다 더 많은 능력을 가진 엄마였다. 세상일은 엄마가 더 안다고 생각했고 준비가 부족했던 엄마를 보며 짜증내기만 했던 것 같다. 

병원에 도착해서 입원수속을 하려는데 필요한 서류를 엄마가 가지고 오지 않았다고 한다. 대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언니에게 전화하고 마냥 엄마에게 화만 냈던 것 같다. 그 때 엄마는 그랬었지, 그냥 집에 가자고. 병실도 특실 밖에 없어 비용이 더 추가된다고 했고, 서류도 미비했고.. 어쩌면 그 때 정말 돌아갔다면 지금 우리의 모습은 많이 달라졌을수도 있는데.

엄마가 그냥 집에 가자고 했었던 마음은 어쩌면 그 깊은 속에 숨어있었던 두려움의 표출이 아니었을까? 이 모든 과정에서 아직은 어리다고만 느껴지는 딸을 옆에 두고 얼마나 두렵고 떨렸을까? 12년이나 지난 지금 그 때 엄마가 느꼈을 감정을 상상해보니 억장이 무너지고 눈물이 차오른다. 

여차저차해서 병실에 들어섰다. 병실은 3인실이었던 것 같고, 꽤나 젊은 (당시 엄마 나이는 만 51세) 아줌마가 딸을 데리고 입원을 하니 다들 관심이 많으셨다. 나는 그 때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기보다는 남자친구를 위해 목도리 뜨기에 여념이 없었고 그저 3일 뒤에는 엄마가 건강하게 병원을 나서는게 당연하다 생각했는데, 그 이후로 알게되었지.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고.

책 제목인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떠오른 구절
'미안해, 엄마도 이번생에 엄마는 처음이라..' 

병원에서 모든 것에 낯설어하고 어리숙하게 행동했던 모습들이 떠오른다. 시술 전 처치를 위한 여러가지 과정을 능숙하게 해내지 못했고 어리바리했던 엄마 모습이 그 때는 왜 그리 답답하게 보였을까. 

그리고 그 새벽, 레지던트가 불러내서 시술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사망할 수 있고, 심각한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고. 순간 너무 무서웠지만 그게 우리의 일은 아닐테니까. 그렇게 믿고 싶었는데 그 겨울은 나에게 너무 가혹했다.

엄마는 시술 중에 극심한 두통과 어지럼증을 호소했고, 시술을 중단하지는 않고 끝까지 시행해서 AVF의 embolization을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했다. 밖에서는 작은 언니와 함께 있었고, 아빠도 뒤늦게 왔던 것 같다. 울면서 엄마를 기다렸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이후에 CT를 찍었고, 돌아와서 엄마는 지속적으로 구역질과 어지럼증을 호소했던 것 같고, 엄마는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중환자실에서 마치 아기처럼 다리를 베베꼬고 입맛을 다시는듯 했다. 모든게 뇌 손상의 사인이었을까?
자세한 설명을 들었던 기억은 없고, 점차 연하작용과 엄마 컨디션이 좋아지자 일반병동으로 옮겨졌다. 엄마가 중환자실에 들어갈 때 했던 기도가 생각난다. 어떤 모습이든 좋으니 제발 엄마를 살려달라고 했었지. 하나님께서는 나의 그 기도를 들어주셨구나..

중환자실 보호자 대기실이 공사중이었어서 마땅히 작은언니와 나는 잘 곳이 없었고, 1층 외래파트에서 손잡이가 없는 의자를 붙여 노트북을 보고 다 괜찮아지겠지..하고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그때 우리 고작 21살, 24살이었는데.

그 길었던 서울대병원에서의 겨울은 잊고 싶기도 한, 하지만 잊어서는 안되는 그런 날들이었다.

우리 엄마는 얼마나 힘들었고 무서웠을까?
왜 나는 그 때 엄마에게 힘이 되어주지 못했을까? 
왜 그 누구도, 엄마가 지금 너무 힘든 상태일거야. 엄마를 잘 위로해드리고 너희들이 힘이 되어주어야해
라고 말해주지 않았을까. 누군가 그렇게 한마디라도 해줬다면..

어린 나이에 엄마의 보호자가 되어야했던 그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나는 자기 뜻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엄마를 답답해하고, 왜 이래야만하는지 하나님을 원망했는데
정작 엄마의 마음을 위로해주지 못한 모진 딸이었어야 했는지...평생 후회할 것 같다. 

그 때의 일들을 잘 기록해두지 않은게 참 후회된다. 기억을 되뇌여 글을 써내려가는데 최대한 왜곡이 없도록 노력했다.
지금부터라도 하루하루를 잘 기록해놓자..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건 기도와 엄마에게 따뜻한 한마디를 해주는 것 뿐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지..

항상 마음 속에 묻어두고 누구에게 말하지 못했던 내용들을 떠올리니 마음이 저며오는 밤이다.

 

부암동은 참 좋은 곳이로구나
우리는 맛있는 점심 식사를 하고 서울미술관으로 향했다.
우연히 보통의 거짓말이라는 전시회를 보았다.

우리는 겉으로 보이는 거짓말에 속고 살아가는데
그 거짓말은 나의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하기도 한다.

그 거짓으로 인해 파멸되고 나 자신을 아프게하지 않도록 중도를 지킬수있어야하겠다.

겨울동물원에서 본 따뜻한 작품

누군가와 감정을 공유한다는게 이렇게 어려운 일일까?

오늘 나는 정말 바보 같은 실수를 저질렀다.
예견된 것이었고 그에 대비를 하기 위해서 고민을 이리저리 하다가, 결국 마지막에 한 선택으로 인해
나는 그에 대한 죄책감과 다른 이들에 대한 미안함에 시달렸다.

상황마다 애가 탔고 어찌할바를 몰랐다.
이미 벌어진 일이고 더이상 어떻게 할 수 없을 때 이것이 나 혼자만의 상황이면
그건 참아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이 나로 인해 피해를 받는 것을 알면서 어떻게 뻔뻔하게 괜찮을 수 있을까?

그 모든 상황을 나는 전화로 그와 함께 했는데
그는 원래 감정 공유가 전혀 안되는듯한 반응을 보일 때가 있다.
하필 그게 또 오늘이었고 그럴때마다 그냥 우리는 안되는건가? 싶은 생각이 든다.

너는 알까? 내가 그런 생각으로 힘들어한다는걸.
결국 우리가 헤어져야만 하는 이유 하나가 또 추가 된다는걸 
그냥 우리에게 안좋은 상황이 있었다로 끝나는게 아니라 나는 더 멀리 보게 된다.
아..내가 잘못된 사람을 골랐구나.

파트타임으로 피곤한 너를 붙잡고 얘기를 하는게 아니었는데
가끔 벽에 대고 얘기하는 것 같단 말을 들어도 피식 웃는 너는 나의 성질을 아주 돋군다.

'나라면..'이라는 전제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사실 맞지 않는 말인데
왜냐면 나는 네가 아니고 너는 내가 아니니까.

그치면 그렇게 나의 아쉬움을 표현한다.
 

어쩔수없는 일이니까 다독여줬으면 안됐을까? 

그리고 결국에는 폭발해서 화를 낸다.

"너 진짜 짜증나"

1월도 벌써 5일
매일매일 글쓰기를 시전해보겠다는 그 결심의 결과물은 왜 격일의 포스팅인걸까?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다보면 인간이 이렇게 연약하고 기대할 수 없는 존재임을 새삼 느끼게 된다.
매일매일 느낀다 정말..후...

계획을 짠다거나 어떠한 결심을 했을 때 그것을 꾸준히 끌고 가는 '주권'이 인간에게 있지 않다라고도 해석할 수 있겠다.
그 마음을 이어가지 못함도, 어떠한 상황으로 인해 굴복하게 되는 것 모두 인간의 능력 밖의 일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러한 결심은 복음 위에 세워졌어야하고, 또 그 실행 역시 날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해야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계획충으로 자처하는 편인데, 그러한 계획을 세세히 짜고 또 그에 따라 살지 못하게 되면 불안에 떠는 것은
나의 삶을 오롯이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는 불신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하나님께서 알아서 다 해주시겠지~라고 인간적으로 태만하고 운명론적으로 사는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내가 바라는 인간상도 전혀 아님..

그저 세상속에서 살아가며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과는 구별된 모습으로(감히 거룩이라 일컫는당) 현재의 나의 삶에 성실하되, 그 모든 기반과 주권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 !! 이것이 바로 내가 표방하는 삶의 모습이다.

여튼 인간은 이리 연약한 존재라서 결심을 이뤄나가는데에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고, 
그러한 노력을 위해 오늘도 기도하는 내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

다음 번에는 나의 연약함 뿐 아니라 다른 이의 연약함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써보고싶다.
밤이 늦었으니 자자 ! 끝 ! 
 

 

2017년에 만나 한 팀으로 사역했던 동생들, 오빠를 만났다.
오랜만에 급으로 잡은 약속, 맛있는 밥과 디저트도 좋지만 오랜만에 나누는 이야기들이 참 귀하다.

그간 각자의 자리에서 멋지게 그리고 침착하게 준비하고 있는 모습들이 멋지고 대견하다. 오랜 시간 준비한 시험, 대학원 진학, 열심히 자리를 지키며 일하는 친구, 사회 첫 발을 내딛는 친구 등등

서로의 스토리를 알기에 더 애틋하고 함께 위로와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이 참 감사하다. 나를 어떻게 판단하고 어떤 모습으로 보는지 신경쓰지 않고 속 마음을 얘기할 수 있는 모임이라니. 

좋은 얘기들 가득하고 지나갈 수도 있지만 우리는 진지하게 서로의 인생에 대해 잔뜩 오지랖을 부려본다.
다음번에 만날때는 눈시울 붉힐 일 없이 웃음만 가득한 우리 모임이 되기를.

또한 우리의 위로 속에 중보와 성령님께서 주시는 위로가 가득하기를..! 

 

 

 

 

 

 

새해를 맞아 멋진 계획보다는 내실 있는 습관을 하나 만들어가는게 어떨까하여 시작한 1일1글쓰기.

김민식PD님의 책을 읽고 그 마음을 확고히해본다.

우리의 일상은 하루하루 쌓여가지만 그 기억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주관과 해석으로 어찌보면 왜곡되어간다. 어제의 나보단 오늘의 내가 더 정확한 것처럼 하루하루 그때의 감정과 일상을 담아보는건 어떨까?

또 훗날 나의 글을 볼 때에는 짜식 잘 컸군 대견하다 하며 새로운 이슈로 힘들어할 미래의 나를 다독여줄 수 있지 않을까?

여러 모습을 담아보자

학생시절의 나

직업 현장에서의 나

신과 나

미래의 나

가족, 친구, 애인으로서의 나

그리고 날마다 발전하고 지적 영역을 넓혀나가고자하는

멋진 오늘의 나

기록의 시작은 스타벅스 샌드위치와 함께

빵 두 장에 둘러싸인 형태였는데 빵 세장으로 타협했는지...두개의 얇았던 샌드위치가 하나의 뚱뚱이 샌드위치로 변했다. 입이 작은 나같은 애들은 먹는데 한시간 걸린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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